의사회는 왜 시작하게 되었는가?
일종의 무력감 때문입니다. 사실 대학교수나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가 아니고서는 일선 산업보건기관,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의 근무환경이 그들에게 부여된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많이 열악한 편입니다.
하루에 수십명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진료실과 현장에서 만나느라, 일터의 문제나 커다란 사회적 과제와 같은 것에 관심 가질 여유도 없는 편입니다. 오히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을 바꿔나가야할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개인의 건강에만 집중하다가 점점 일터의 건강에 소홀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노동 현장은 20년 전 처음 “산업의학과”가 시작되었을 때와 달라진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맨몸으로 일하다 메탄올에 눈이 멀고, 실적이 떨어진다고 네 아이를 두고 자살을 선택하고,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해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마티즘이 있어도 공장에서 반복노동에 시달리고, 심장에 6개의 관을 박고서라도 야간 경비를 서야 하고, 생활비가 없어 진폐 장애를 가지고도 석산에서 계속 그 일을 해야 하고, 병원을 가는 것도 관리자가 허락해줘야 가능하고, 산재가 나면 보상과 위로는커녕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나고, 나를 성희롱한 그 자식과 여전히 마주 보며 일해야 하고, 20년 전에도 큰 탈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똑같이 염색하고 도금을 하고 가공을 하고 세척을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지 못할 때 무력감을 느끼듯이, 이러한 열악한 일터의 현실, 잔인한 노동자의 건강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무력함을 느껴왔습니다. 그동안 무력감을 느끼고 불편감을 느끼는 그 지점에서 멈춰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일터건강을 지켜야할 우리의 존재가치가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환자가 질병이 나아도 의사가 필요없지만,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할 때도 의사가 필요없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의 고민은 우리 의사들이 도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멈췄던 그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의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마음과 머리를 모으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의사회의 시작입니다.